10월의 고든치
마당에 내린 햇살이 투명하다.
밤 송이가 바글바글 떨어져 손톱만한 알밤을 주우러 다람쥐가 수시로 들락거린다.
9월 빈 마당을 지키던 과꽃은 꽃잎을 떨구고 씨앗이 영근다.
여려서 금방 꺾일것 같던 들깨모종 한지가 며칠밖에 안 된 것 같은데,
키는 나보다 크고 씨앗이 여물었다.
심지도 않은 족두리꽃이 저 멋대로 자라 층층이 꽃을 피우고
그 곁에서 나팔꽃도 줄을 감은다.
이 녀석들 어디서 날아들었을까-
가을에 씨를 받아 내년엔 식구을 늘려줘야겠다.
아침 7시반쯤의 풍경이다.
물안개가 산 허리를 감고 햇살이 유리알 같다.
자주 달개비도 여름부터 줄곳 피고 지고..
아침 이슬을 영롱하게 썼다.
삭막하던 돌 담주변이 제법 어우러졌다.
앵두도 키가 컸고,
송엽국은 제법 넓직하게 자리잡았다.
이 녀석을 겨울을 견딜까...
아침햇살을 한껏 받아야 활짝 피는 녀석들..
아침 7시 반은 마악 피어날 준비시간인가보다.
통통해진 이파리가 바위틈을 가득 메웠다.
손바닥만한 녀석이 여름내 퍼져서 식구를 늘였다.
이 아이 이름을 어디서 좀 알아오나?
집 짓던 중에 집구경을 왔던 젊은 부부가 선물 한것인데...
이 아이도 이름을 모른다.
꽃 집 아저씨가 덤으로 주신걸 심었는데...
여름부터 지금껏 하나 둘..쉬엄없이 피고 진다.
경자네서 추석연휴에 가져다 심은 '꽃범의 꼬리(나는 '유미 꼬리' 라부른다)'
올 해는 꽃을 기대 않고 심었는데,
제법 폼을 내며 피어난다.
얘는 ' 낮 달맞이' 다.
안중집 들판 산책을 하다가
아스팔트 포장틈에 어렵사리 자라 있는 녀석을
한 여름 바짝 마른 틈에 주전자로 물을 붓고 겨우 꺼집어 내서 데려왔다.
절반은 산것 같다 잎이 나온걸 봐서...
이렇게 창가 작은 마당은 조금씩 꽃단장이 시작되었다.
낮 달맞이. 자주달개비. 송엽국. 꽃범의 꼬리. 국화.
보이진 않으나 '앵초'도 심었고, 버마스쿰이랑 샤프란도 묻었다.
산책길에 누가 심고 남은 모종을 개울가에 버렸기에
주워다 심었더니...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 통에 배추벌레를 미쳐 못 잡아서 절반은 먹었다.
옆집 할머니께서 '국 한번 끓이겠다' 신다.
김장배추싹인데 저 모양을 만들고 말았다.
비료도 약도 안하면 저리되나 보다.
창 밖은 아침햇살이 이슬위에 반짝이고
창 의자에 걸터 앉으면 작은 마당이 제법 예쁘다.
저 깨밭을 이제 꽃밭으로 가꿀것이다.
마당을 넓혀달라고 사 놓고 간 흙 5차를
마당은 그냥두고 마당 앞에 높다란 둑으로 만들어놔서
나를 기함하게 하던 자갈언덕 같던 곳-
저곳을 속상해 하는 내가 안타까우셨던 옆집 할머니가 심어놓으신 맨드라미
그 너머로 작은 나의 집이 밝은 햇살에 빛난다.
이 작은 언덕에다 내년봄엔 보리수를 심어야겠다.
지나는 길손도 따 먹을 수 있도록...
지극히 간결한 아침상을 차렸다.
온돌방에 불을 지피고 남은 숯불속에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묻어 두면
아침에 식었으나 잘 익어 있다. 먹을만하다.
식탁너머 창밖도 햇살이 곱고 벌써 가을냄새가 난다.
온돌방 창이 붉게 물든다 싶어 현관에 나가 서면
서쪽하늘이 붉게 탄다.
새벽 4시.
자다가 깨서 창을 올려다 보았더니
별이 밝아 밖에 나왔다.
카메라 다리도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을 수 없어서
카메라를 차 위에 얹고 하늘만 찍었다
지붕위로 은하수가 흐르고
별이 총총히 빛났다.
별을 다시 보려고 다음날도 시계를 맞추고 2시반에 일어 나서 별을 보았다.
그리고 들길을 아침이 올때까지 걸어다녔다.
신발이 이슬에 다 젖도록...
잠 깨이면 올려다 보이는 침대 머리맡의 창.
저 하늘에는 별이 참으로 밝고 곱게 빛난다.
물론 달도 곱게 든다.
나는 이곳에서 날마다 기적이고 축복이게 살테다.
내겐 밝은 눈이 있어 새벽별과 처연한 달과
물안개 두르며 아침이 오는 순간과
잘 익은 곳식들을 볼 수 있으니 기적이고
잘 들리는 귀 있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니 이 또한 기적이며,
튼튼한 다리 있어 이슬내린 아침 오솔길 걸으니 기적이며,
건강한 몸 가져서 산에 나무 주워다 아궁이에 불 지피고
따근한 아랫목에서 책을 읽으니 또한 기적같고,
작고 아담한 뜰 가졌으니 좋아하는 꽃 심어서
이들이 피고 지는 순간들을 즐기니 기적,
먹을 양식 있고 정 나눌 좋은 이웃이 있으며 찾아드는 벗 있으니
기적 아니것이 없다.
빨래줄에 보송하게 이불 널어 말릴 수 있고
마당 조그만 알밤을 다람쥐와 경주하듯 주워 나누니 이 엿기 기적 아닌가-
오늘도 나는 이 기적이고 축복인 아침을 맞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
조그마한 산 앞에 자그마한 집을 지었도다
뜰에 심은 매화 국화 해마다 불어나고
구름과 시냇물이 그림처럼 둘렀으니
이 세상 나의 삶이 더 없이 사치스럽네
- 한 강집 의 회연초당-